분노와 멸시 그리고 존중
- 작성자 : 손영호목사
- 조회 : 257
- 23-07-23 20:37
분노와 멸시 그리고 존중
요즘 대학원 졸업반 시절에 사 두고 읽지 못했던 책을 드디어 읽고 있습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 산상수훈을 바탕으로 천국의 선을 이루어 가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을 소개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의를 향한 최우선의 기본 단계로 제시하시는 것이 바로 분노와 멸시의 제거입니다.
분노란 우리의 뜻을 꺾고 삶을 방해한 이들에게 즉각 방해로 갚거나 심하면 해를 입히도록, 우리를 몸 안으로부터 사로잡아 충동하는 하나의 감정입니다. 분노는 그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줍니다. 그리고 분노는 분노를 낳습니다. 분노 자체가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통제하지 않으면 언제나 죄가 되고 상처로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싸늘한 시선과 언성을 높이는 분노에는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자연 발생적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고의적으로 연루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입니다. 발생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 분노를 택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나타낼 때 타인에게도 타격을 주지만 결국 자신의 삶과 건강과 행복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됩니다.
분노와 함께 쌍둥이를 이루고 있는 재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멸시입니다. 멸시는 고의로 상대를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멸시는 삶 속에서 분노보다 더 만연해 있습니다. 분노는 상대를 해치려 하지만, 멸시는 상대가 해를 입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말은 그렇게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멸시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더 비참하게 깎아 내리기가 훨씬 쉽습니다. 싸움은 언제나 분노에서 멸시로 그래서 상스러운 말로, 욕지꺼리로 표현됩니다. 거기서 다시 구타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멸시하는 마음이 들면 최초의 분노가 정당화 되면서 그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분노와 멸시의 태도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분노와 멸시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달라스 윌라드는 그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고 존중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존중하고 있다면 그러한 노력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 말라는 율법적 의식보다는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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